설교하는 기계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임솔성
신학부터 신대원까지 마치고 전임을 앞둔 전도사가, 설교의 무게를 덜려고 설교 스페이스를 만들었습니다. 검증된 신뢰로 설교 전 과정을 돕고, 목회자를 다시 목양의 자리로 데려가려는 이야기입니다.
"설교하는 기계." 전임으로 먼저 나간 선배들이 자기를 그렇게 부릅니다. 새벽, 수요, 금요, 주일. 일주일에 설교만 최소 세 편입니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저는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저는 이번에 신학부부터 신학대학원까지 학기를 다 마쳤습니다. 지금은 교육부서 한 부서를 맡아 사역하고, 곧 전임의 자리로 들어섭니다. 부서 하나를 맡아도 설교의 압박은 늘 따라옵니다. 가끔 장년예배 설교를 맡는 주간이면, 준비하는 길이 얼마나 길고 무거운지 모릅니다.
이 글은 제가 왜 설교 스페이스를 만들었는지 적은 글입니다. 먼저 말씀드리면, 이것은 제가 필요했던 도구입니다.
빠른 답은 많은데, 믿을 답이 없었습니다
생성형 AI는 빠릅니다. 원하는 자료를 금방 찾아 주고, 묻는 말에 곧장 답합니다. 그런데 설교 준비에 그대로 쓰기엔 늘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내용을 믿어도 되는가. 출처는 어디인가. 그럴듯한데 확인할 수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설교는 한 문장이 틀리면 강단 전체의 신뢰가 흔들립니다. 회중은 예배 중에도 검색하기 때문입니다. 빠르다고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빠른 답보다 믿을 수 있는 답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검증된 주석 위에서 시작했습니다
설교 스페이스는 검증된 주석을 토대로 출발합니다. 근거가 분명한 정보 위에서 본문을 주해하고, 개요를 잡고, 원고 초안까지 함께 준비합니다. AI가 해석을 지어내지 않게 막고, 성경 인용은 출처까지 확인합니다. 설교의 무게감은 말투가 아니라 검증된 내용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설교 후가 아니라, 설교 전 과정을
이미 좋은 서비스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완성된 설교를 바탕으로 요약과 나눔 자료를 만드는, 설교 후에 강점이 있습니다. 설교 스페이스는 그 앞을 돕습니다. 본문을 정하고, 주해하고, 개요를 세우고, 원고를 쓰는 설교 전 과정입니다.
이것은 책상에서 기획한 도구가 아닙니다. 실제 목회의 길을 걷는 제가, 매주 설교 앞에서 필요로 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만드는 내내 기준이 하나였습니다. 내가 강단에 들고 올라갈 수 있는가.
덜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더 중요한 자리를 위해
그렇다고 AI가 설교를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초안을 만들고 검증을 돕지만, 그 원고를 설교로 완성하고 강단에서 선포하는 것은 늘 목회자의 몫입니다. 설교 스페이스가 덜고 싶은 것은 '준비의 무게'이지, 목회자의 자리가 아닙니다.
짐이 가벼워지면, 더 중요한 자리에 마음을 쓸 수 있습니다. 성도를 심방하고, 함께 교제하고, 곁에 있어 주는 일입니다. 목회의 심장은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하는 기계가 아니라, 말씀을 품고 사람을 돌보는 목회자로 서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더 멀리
바람이 있습니다. 설교 스페이스 곁에서 설교의 무게를 덜고, 그렇게 아낀 힘으로 설교의 힘이 더 자라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의 능력이 한국 교회를 넘어 세계를 움직이기를 바랍니다. 저를 포함해, 같은 부담 앞에 선 목회자들이 그 길을 함께 걷기를 바랍니다.
설교 한 편을 정직하게 준비하는 자리에, 설교 스페이스가 곁에 있겠습니다.